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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흰 가운이 주는 신뢰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상세페이지를 보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마주합니다.
흰 가운을 입은 전문가의 사진, 연구소 이미지, 특허나 시험자료, 각종 인증 정보가 한 화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료를 보면 처음 접하는 제품이라도 조금은 안심하게 됩니다. 내가 모든 성분과 자료를 직접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이를 ‘권위의 원칙’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전문가의 직함이나 자격처럼 권위를 상징하는 단서를 의사결정의 지름길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도 신제품을 준비할 때 연구자료나 인증, 제품과 관련된 객관적인 근거를 어떻게 전달할지 중요하게 봅니다.
하지만 아내가 운영하는 작은 위탁판매 스토어는 상황이 다릅니다.
유명 전문가를 모델로 활용할 수도 없고, 우리 스토어만의 독점적인 연구자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조사가 만든 제품을 여러 판매자가 함께 판매하는 구조에서는 대기업처럼 ‘권위’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다 《설득의 심리학》 개정판에서 새롭게 추가된 ‘연대감의 원칙’을 읽으며 다른 방향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고객과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이 작은 스토어에는 더 잘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본론 1: 권위와 연대감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개정판 《설득의 심리학》에는 기존 원칙에 ‘연대감(Unity)’이 추가되어 총 7가지 설득 원칙이 소개됩니다.
연대감은 단순히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구나.”
처럼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느낌에서 시작합니다.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이 작은 온라인 스토어와 꽤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대형 브랜드가 “전문가가 연구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작은 판매자는 오히려
“저도 상품을 고를 때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처음 받아보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기 어려워 직접 비교해봤습니다.”
처럼 고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권위가 ‘이 사람은 잘 알고 있다’는 신뢰라면, 연대감은 ‘이 사람은 내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신뢰에 더 가깝습니다.
본론 2: 권위를 억지로 만들어내면 오히려 어색해진다
작은 스토어의 상세페이지를 만들다 보면 대형 브랜드의 구성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전문가 이미지, 연구소 사진, 논문 캡처 등을 넣으면 페이지가 조금 더 전문적으로 보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료를 가져오거나 스톡 이미지 속 모델을 실제 개발자처럼 보이게 표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소비자는 제품 정보보다 먼저
“이 사람이 실제로 이 제품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에서는 전문가 추천이나 체험담을 이용한 광고 표현이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스토어라면 없는 권위를 만들어내기보다 제조사, 원재료, 제품 구성처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본론 3: 전문가가 아니라 친절한 통역사가 되기
아내의 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부분입니다.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하기보다 고객이 궁금해할 정보를 대신 정리해주는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상세페이지에 원재료명이 길게 적혀 있다고 해서 그대로 복사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원료가 들어 있는지 보기 쉽게 표로 정리합니다.
제품 크기도 숫자만 적는 대신 실제 포장과 함께 촬영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1박스가 몇 일분인지, 하루 몇 회 섭취하는지, 개별 포장인지 병 포장인지처럼 구매 전에 자주 확인하는 정보도 앞쪽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는 특별한 전문 자격이 없어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판매자가 어려운 내용을 대신 정리해주면 고객은 페이지를 여러 번 오가며 정보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역할을 ‘친절한 통역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처럼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를 읽기 쉬운 언어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본론 4: 연대감은 꾸며낸 공감이 아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연대감 역시 억지로 만들면 또 다른 광고 문구가 됩니다.
실제로 겪지 않은 일을
“저도 똑같이 고민했습니다.”
라고 쓰거나, 특정 고객층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낸 경험담을 넣는다면 결국 앞서 이야기한 ‘빌려온 권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연대감은 거창한 사연보다 작은 사실에서 나오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상품을 처음 받았을 때 저도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상세페이지에서 찾기 어려워 제조사 자료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고객 문의가 반복되어 해당 정보를 첫 화면에 추가했습니다.”
이처럼 실제 운영 과정에서 생긴 경험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작은 스토어가 대기업보다 유리할 수 있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객 문의 하나를 직접 읽고, 필요한 정보를 곧바로 상세페이지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위에서 설명하기보다 옆에서 도와주는 것
《설득의 심리학》의 권위와 연대감 원칙을 함께 읽으면서 고객 신뢰를 만드는 방법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성과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한 순간에는 권위가 중요합니다.
반대로 고객이 복잡한 정보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할 때는 같은 눈높이에서 정보를 정리해주는 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스토어가 대기업처럼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없는 연구소를 있는 것처럼 꾸미거나 전문가 이미지를 빌려올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고객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살펴보고,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정확하게 보여주고,
어려운 내용은 쉽게 풀어주는 것.
결국 작은 스토어가 만들 수 있는 신뢰는
“이 판매자는 나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내가 판단하기 쉽게 도와준다.”
는 느낌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문직 자격이나 특허가 없는 판매자는 어떻게 신뢰를 만들 수 있나요?
없는 전문성을 꾸며내기보다 제조사 정보, 제품 구성, 원재료, 포장 형태, 섭취방법처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정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객이 구매 전에 궁금해하는 정보를 찾기 쉽게 제공하는 것 자체가 신뢰를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Q. 상세페이지에 논문이나 연구자료를 넣으면 안 되나요?
연구자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해당 연구가 실제 판매 제품의 효과를 직접 입증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거나 인정된 기능성 범위를 넘어서는 표현으로 연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약처도 건강기능식품 표시·광고에서 인정된 기능성 범위를 벗어난 표현이나 소비자를 오인하게 하는 광고에 주의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Q. 연대감의 원칙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고객인 척하거나 가상의 경험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영 과정에서 느낀 점을 공유하는 방법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복해서 들어온 문의나 판매자가 직접 확인한 제품 구성처럼 사실에 기반한 경험을 고객의 언어로 풀어주는 방식입니다.
공식 도서 정보
- 책 이름: 설득의 심리학 1(개정 6판)
- 저자: 로버트 B. 치알디니
- 출판사: 21세기북스
- 발간일: 2023년 4월 26일
- 핵심 주제: 상호성, 호감, 사회적 증거, 권위, 희소성, 일관성, 연대감 등 7가지 설득 원칙
[글쓴이의 안내]
이 글은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1》에서 다루는 권위와 연대감의 원칙을 온라인 커머스 환경에 대입해보며, 전문직 타이틀이나 독점적인 연구자료가 없는 작은 스토어가 고객의 눈높이에서 신뢰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본 실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