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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AI가 답을 빨리 줄수록 생각은 줄어드는 걸까
몇 달 전부터 다음 마케팅 공부 주제를 고민하면서 필립 코틀러의 책과 최근 마케팅 환경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무기가 되는 스토리》를 정리하면서 고객과 브랜드의 관계를 깊게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AI와 데이터, 자동화처럼 지금 현업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기술이 실제 마케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켓 5.0》의 여러 개념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습니다. 특히 책의 부제인 ‘인간성을 향한 기술(Technology for Humanity)’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습니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결국 그 기술이 향해야 할 곳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술을 한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다른 회사에서 오랫동안 마케팅 PM으로 일하고 있어 만나면 자연스럽게 업계 이야기와 조직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같은 시장에서 일하다 보니 때로는 서로 경쟁사의 입장이 되기도 하지만, 실무에서 느끼는 고민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날 친구가 꺼낸 고민은 AI였습니다.

“요즘 친구들이 AI에 너무 익숙해졌어. 자료를 보고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먼저 AI한테 물어보고 그 답을 자기 생각처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
친구가 근무하는 외국계 기업은 제가 있는 회사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의견 개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회의에서 의견이 다르면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더라도 논리와 근거가 있다면 서로의 주장을 강하게 부딪혀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답답해했던 것은 후배들이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긍정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논리 대신 “AI에서 이렇게 나왔습니다”라는 답으로 대화가 끝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저 역시 최근 회사에서 경험했던 몇몇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생성형 AI를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경쟁 상품 분석이나 고객 후기 정리처럼 반복적인 업무에서는 예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AI가 시간을 줄여주는 것과 생각해야 할 과정까지 대신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일까?
이미 읽고 있던 《마켓 5.0》의 내용도 이 질문과 자연스럽게 연결됐습니다. 책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고객 경험을 개선하고 마케팅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실제 현업에서는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것만으로 고객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회의에서 이 질문을 직접 생각해 볼 만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후배 직원이 생성형 AI로 만든 건강기능식품 상세페이지 초안을 보여줬습니다. 원료와 함량, 제조 방식, 경쟁 제품과의 차이까지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작업 속도와 정보 정리 능력만 본다면 분명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면을 보면서 한 가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품을 사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정보는 좋은데, 퇴근길에 휴대폰으로 이 페이지를 보는 고객이 첫 화면에서 가장 궁금한 게 정말 추출 공법일까?”
후배는 건강 관련 제품일수록 객관적인 정보를 먼저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의견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 말이 맞는지를 경험이나 직급으로 결정하기보다 실제 고객 문의와 후기를 다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본론: AI를 버린 게 아니라 역할을 바꿨다
처음에는 AI에게 “이 제품을 잘 팔 수 있는 카피를 만들어줘”라고 요청했다면, 수정 과정에서는 역할을 바꿨습니다. “고객 문의에서 반복되는 질문을 정리해 줘”, “후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불편을 묶어줘”, “경쟁 상품의 부정적 리뷰를 분류해 줘”처럼 AI를 카피라이터보다 리서치 보조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자료를 다시 보니 고객이 실제로 궁금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매일 챙기기 어렵지는 않은가”, “어떻게 먹으면 되는가”, “기존 제품과 무엇이 다른가” 같은 질문들이었습니다.
기술적인 정보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위치를 바꾸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첫 화면에서는 고객이 실제로 궁금해하는 문제를 먼저 보여주고, 원료와 기술 정보는 고객이 “그래서 믿을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배치했습니다.
| 구분 | 기술 중심 | 고객 중심 |
|---|---|---|
| 첫 화면 | 원료·공법 | 고객의 질문 |
| AI 역할 | 카피 생성 | 리뷰·문의 분석 |
| 마케터 역할 | 결과 선택 | 맥락 해석 |
이 과정에서 《마켓 5.0》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기술을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 고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AI는 수백 개의 리뷰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고객이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마케터의 몫입니다.
결론: AI 시대에는 생각하는 힘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친구와 술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계속 남았습니다.
“AI가 답을 만들어주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은 자기 생각을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AI를 덜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 역시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AI가 대신해도 되는 일과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하는 일을 구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은 AI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초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왜 고객이 이런 말을 했는지, 무엇을 먼저 보여줘야 하는지, 이 정보가 정말 우리 고객에게 중요한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합니다.
AI가 발전할수록 누구나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마케터의 차이는 AI를 사용하느냐보다 AI가 준 답을 가지고 얼마나 깊게 다시 생각할 수 있느냐에서 생길지도 모릅니다.
《마켓 5.0》을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던지게 된 질문도 이것입니다.
“이 기술을 사용한 뒤 우리는 고객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기술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기술은 생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더 좋은 질문을 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도구여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생성형 AI로 상세페이지 카피를 만들면 안 되나요?
아닙니다. 초안 작성과 자료 정리에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고객의 언어와 제품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사람이 최종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Q. AI는 마케팅에서 어디에 가장 유용한가요?
리뷰 분류, 고객 문의 정리, 경쟁 상품 분석처럼 많은 자료를 빠르게 구조화해야 하는 작업에서 특히 유용합니다.
Q. 기술 정보는 상세페이지 뒤쪽에만 넣어야 하나요?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시점입니다. 고객이 제품에 관심을 가진 뒤 신뢰 근거를 찾는 순간 기술 정보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공식 도서 정보
- 책 이름: 마켓 5.0
- 저자: 필립 코틀러, 허마원 카타자야, 이완 세티아완
- 부제: 인간성을 향한 기술
- 국내 출간: 2021년
- 주요 내용: 데이터 기반 마케팅, 예측 마케팅, 맥락 마케팅, 애자일 마케팅
[글쓴이의 안내]
이 글은 필립 코틀러의 《마켓 5.0》을 공부하면서 기술과 사람의 관계를 고민하던 중, 오랫동안 마케팅 PM으로 일한 대학 동기와 나눈 대화와 실제 이커머스 업무 경험을 함께 정리한 서평입니다. 앞으로도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현업에 직접 적용하면서 맞았던 부분과 예상과 달랐던 부분을 함께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